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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사회선교 정신과 사업

1. 교회와 사회선교

성서가 전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1. 케리그마 – 복음(福音)을 선포하고
  2. 디아코니아 – 섬기고 봉사하며
  3. 코이노니아 – 교제하는 공동체

이 세가지인데 그 중 두 개가 세상에 관한 것이다.

사회선교란?

  • 교회의 사회참여, 사회에 대한 교회의 책임. 예수님의 명령인 ‘이웃사랑’의 실천방법. 즉 사회선교는 교회가 교회답기 위한 필연적 요소이며 이를 떠나서는 교회의 본질을 논할 수 없다. 교회가 다양한 형태로 수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업 역시 이 사회선교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 즉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사회복지사업 참여에 대해 의문을 갖지만, 그것은 교회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사회선교’는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선교의 주체는 하느님 자신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선교의 주체가 아니라 선교의 결과물이며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선교의 도구이자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관점에서 격변하는 세계와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의식이 강화되었고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선교 과제를 발견해 온 것이 현대 세계교회의 역사이다.

2. 성공회와 사회선교

16세기 영국 종교개혁의 결과로 성공회 탄생 – 개혁과 반개혁을 거듭했던 과정은 중도의 길을 걷는 교회로 만드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즉 성공회 신학과 역사의 중요한 주제인 ‘VIA MEDIA'(중도의 길)가 이 때 형성된다.

성공회식 중도의 길은 이후 영국사회의 다양한 경험과 맞물리며 진보적 사회선교정신을 형성시켰다.

  • 예컨대 초기 산업화 시절의 비참함 속에 노동현장에 내몰린 아이들을 위해 교육과 복지의 기회를 제공하는 ‘선데이 스쿨’(오늘날 주일학교)이 생겨난 것 등이다.
  • 특별히 성공회는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 창설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소수자권리를 옹호하고 수용하는 진보적 교회로, 구교와 신교의 가교 역할을 하는 에큐메니칼 교회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3. 대한성공회 초기 사회선교의 역사

한국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이러한 세계성공회의 신앙유산을 적극 수용하고 이를 우리 현실에 맞게 토착화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일제강점과 한국전쟁, 군사독재로 이어진 격동의 한국현대사 속에서 민주화와 인권, 사회정의와 평화를 부르짖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그래서 한국성공회는 한국의 여러 기독교 교단 가운데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교회로 인식되어 있다.

1960년대 이전

  • 선교초기 교회설립과 함께 수십 개의 학교와 병원 건립
  • 한국전쟁 직후에는 고아원과 나환자 자활촌 건립
  • 다른 교단도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오지와 낙후지역에 이런 시설들을 주로 세웠다는 점, 그리고 그곳에 정부나 민간의 추가적 지원의 손길들이 들어가면 이를 국가나 지방정부 등에 넘기고 물러나왔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는 국교로서의 위상에 익숙했던 관행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결과적으로 초기선교사들이 세웠던 수 많은 학교들과 병원들은 오늘날 대한성공회의 소유물로 남아있지 않다.)

1960년대 이후

  • 1960년대 태백 탄광촌 선교, 영등포 공단의 산업선교
  • 베드로 학교 건립으로 시작된 장애인 선교
  • 나환자들의 자립을 지원했던 남양주지역 선교
  • 1960년대의 사회선교는 이후 도시빈민, 이주노동자, 결식계층, 노숙인 등을 지원하는 대한성공회 최근 사회선교의 기틀이 되었다.

4. 대한성공회 현재 사회선교의 역사와 현황

① 1970년대 – 1980년대 중반기

  • 정치적으로 군사독재정권의 말기, 곧 민주화 운동이 강렬했던 시기이다.
  • 성공회는 한국사회에서 수적으로 작은 집단이다. 기독교 인구가 25%, 신구교를 합하면 30%에 이르지만, 그 중 성공회는 작은 교단이다. 그러나 주로 사제들의 헌신, 청년그룹의 열정으로 민주화운동에 열심이었던 시기이다.
  • 특히 서울대성당이 1987년 6월항쟁의 진원지가 되면서 대한성공회는 한국 민주화 운동에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 그 결과 진보적인 젊은 그룹이 사제로 배출되고 이후 교회 목회와 사회선교 영역 등 다방면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② 1980년대 하반기 나눔의집 시작

  • 나눔의집은 도시재개발이 한창이던 1986년 9월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인 상계동에서 시작됐다. 나눔의집은 도시빈민 지역선교를 목표로 세워진 기관으로 가난한 이들이 겪는 모든 문제들과 씨름하는 일종의 대안교회모델인 셈이다. 현재 나눔의집은 서울교구 9곳을 포함 전국 23곳에서 활발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 나눔의집의 활동은 초기에는 철거반대 활동, 탁아 ․ 공부방, 마을도서관 사업 등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90년대 초반 자활사업에 관한 실험이 다양하게 시도되면서 오늘날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역자활센터 사업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지역활동 내용도 더 다양화되어 가정결연사업, 먹기리 나눔운동(푸드뱅크, 반찬배달 등), 가출청소년쉼터나 청소년자활지원관, 지역 장애인 자활지원 사업, 노숙인 쉼터 등으로 확대되어져 왔다. 물론 대안교회로서의 신앙공동체 활동도 꾸준히 벌이고 있다.
  • 나눔의집은 대한성공회 사회선교의 간판기관이라 할 수 있다. 나눔의집이 기존의 사회선교활동과 가장 큰 차별성을 가지는 것은 소위 ‘투신’이라는 관점을 ‘함께 함(with)’의 문제로 전환, 정착화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눔의집은 대상화를 가장 경계한다. 클라이언트나 프로그램의 대상자가 아닌 이웃이자 친구로 만난다. 사업이나 프로그램이 아닌 삶을 나누고자 한다. 기독교의 성육신 정신과도 통하는 이 철학은 무엇보다 헌신적인 현장사제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공교회적 체제가 어우러졌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눔의집 영성>

  • 예수와 복음을 몸으로 사는 부활의 증인이고자 한다.
  •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 노동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 공동체로 살고자 한다.
  • 투쟁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 가난하게 살고자 한다.

③ 1990년대 하반기 (IMF 시기)

  • Food Bank
    성공회 푸드뱅크 역시 오늘날 대한성공회 사회선교사업을 대표하는 사회선교 사업 가운데 하나이다. 1998년 5월에 냉동탑차 4대를 구입해 서울지역 4곳(동,서,남,북)을 중심으로 시작된 푸드뱅크는 현재 전국 30여개 지부를 통해 하루 한 끼 이상의 식사를 12,000명에게 공급하는 규모 있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사업 내용은 잉여음식 즉 음식을 새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남는 음식을 확보하여 결식이웃들에게 전달하는 사업이다.
    특히 성공회 푸드뱅크는 2004년부터 새로운 기부문화운동을 시작하였다. ‘주먹밥콘서트’라는 것이다. 내용은 점심시간을 이용한 대중음악 공연을 통해 후원금을 모금하는 것이다. 가수들은 무료로 공연한다. 자원봉사자들이 주먹밥을 만든다. 시민들은 주먹밥과 음료수를 무료로 제공받고 공연을 관람하면서 결식이웃에 대한 후원금을 기부한다. 현재 ‘주먹밥콘서트’는 새로운 기부운동으로서만이 아니라 한국의 대중음악 활성화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
  • 노숙자 지원사업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대량으로 발생한 노숙인 문제는 대한민국 사회가 처음 겪은 가장 심각한 사회현상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수천 년간 이어온 전통사회의 모습이 본질적으로 깨어진 상징적 사건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의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약 2년간의 초기 노숙인 지원사업은 응급구호사업의 성격을 띠었다. 말 그대로 숙식제공사업이 주류를 이루다가 1999년 이후 점차 자활지원, 주거문제의 해결, 전문 재활시설 등으로 다양화되어 왔다.
    현재 대한성공회가 운영하고 있는 노숙인 관련 사업은 전문재활쉼터 1개(비전트레이닝센터) 및 부설 자활사업장(영림단) 5개, 가족노숙인쉼터(살림터) 1개, 드롭인센터(다시서기센터) 1개, 생활공동체 1개 등 9개에 이른다.
    현재 노숙인사업의 고민은 실질적인 자립자활, 사회복귀를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방향은 ‘사람 중심’이다. 이런 각도에서 몇 년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 있다. 예를 들어 생활공동체(현저동 쪽방공동체) 사업이나 성프란시스대학(노숙인 대상 인문학 강좌)등 이다.
  • 이주노동자 지원사업
    대한성공회의 이주노동자 지원사업은 1991년 4월 음성나환자들을 위한 집단 이주 촌락이었던 마석(성생공당)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영어미사를 드리면서 시작되었다. 남양주 마석에서 시작된 지원활동은 일산, 포천, 서울, 용산지역으로 이어졌다.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체류가 많은 지역에서 나눔의집의 부설사업 형태로 확산되었다.
    초기에는 불법체류자들이 당하던 인권유린, 임금체불 등의 문제를 해결해 주던 일은 점차 쉼터를 제공하고, 교육과 의료의 기회를 제공하는 식의 활동으로 발전했고 지금은 보다 진일보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
    가령 문화적 다양성 속에 이들과의 공생을 모색하며, 2세들의 교육 및 의료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2005년에는 성생공단 내에 국내 최초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복지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또한 본국으로 귀국한 이주노동자들의 자립과 자활을 돕는 ‘귀환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는 1곳으로 필리핀 북부지역에 사제를 파송하여 구체적인 사업을 모색 중이다. 이 사업은 해외선교사업의 소중한 모범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④ 전문사회복지시설 운영

  • 위에 열거한 사회선교사업 외에 대한성공회는 다양한 전문복지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베드로학교, 희망학교와 같은 정신지체장애인들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과 근로생활시설인 우리마을, 생활시설 성 보나의집, 장애인복지관, 종합사회복지관, 노인들을 위해 수도회가 운영 중인 성 안나의집과 노인복지관, 자활후견기관들과 노인인력지원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센터와 전문복지관, 가출청소년 쉼터와 청소년자활지원관 등 다양한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다.

⑤ 교회의 지역사회 활동

  • 대한성공회에는 전국적으로 약 200개의 교회가 있는데 1/3 정도의 교회들이 다양한 형태의 지역사회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가정결연이나 결식아동지원, 공부방 운영 등이다. 교회 예산 중 사회선교활동에 쓰이는 예산은 평균 7%정도이다.

5. 대한성공회 사회선교의 전망과 과제

대한성공회의 사회선교는 과거에 벌여왔던 사업들을 계승 발전시키는 한편 중장기적 전망과 예언자적 정신으로 향후 우리사회가 준비해나가야 할 일들을 앞서 꾸려가게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사회는 이미 신자유주의적 사회화와 그로 인한 다양한 부정적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표적 현상이 양극화이다. 그러나 현실의 양극화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현실의 양극화가 결과로서 드러날 미래이다. 양극화 속에 성장하는 유청소년 세대가 20-30년 후 성년이 될 때는 저출산, 고령화와 맞물려 엄청난 사회문제로 표출될 것이다.
대한성공회 사회선교의 중장기 전망은 자라나는 세대를 대상으로 교육, 문화, 의료, 생계의 4대분야에 걸친 사회적 차별을 줄이는 전문재단의 설립, 양과 질적인 차원에서 푸드뱅크의 전문성 확대강화, 각 사회선교 분야의 가시적 성과를 사회적 기업형태로 집중 가시화, 전국 차원의 성공회사회선교 네트워크(SSMN) 구축, 해외 성공회자원과의 적극적 결합, 아시아 사회선교연대의 틀 구축 등이다. 특히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복지적 참여를 줄이는 대신 대안적 복지를 위한 다양한 노력도 기울여 나갈 계획이다.

출처: https://skhsmstory.tistory.com/31 [니콜라울림마당-대한성공회서울교구사회선교국]
니콜라 울림마당에서 지난 이야기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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